오랜만에 동네를 다시 돌아보니 80년대 중반까지 심광사 뒷골목으로 다녔던 국민학교 길에 샘터가 2곳 있었고 지금 휴먼시아 쪽에도 샘이 있었던 기억들...온동네 사람들의 식수원이고 빨래터 이었던 곳, 오랜만에 또 앞산(인단산)에 오르니 아이들이 오르락 내리락하며 다니던 반질반질한 길들이 희미해진 것을 보니 이젠 사람의 발길이 뜸 한 듯, 아쉬움은 우리의 앞산이 이상한 이름표를 갖고 있다는 것에 마을축제를 위해서라도 우리 앞산의 이름을 바르게 다시 써줘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봄이 오면 우린 산에 올라 아카시아 꽃을 한바구니 따서 먹고 놀고, 소나무 열매도 따서 시큼 먹고, 여름이면 앞 냇가로 뛰어가 수영하고 물고기 잡고, 가을이면 다시 산으로 올라 도토리, 상수리나무를 두두리면 줍고 또 줍고 쌉쌀 맛난 도토리묵 먹고, 겨울이면 냇가에 어름배타고 아버지가 만들어주신 얼음썰매타고. 비탈진 산에 올라 비닐포대에 앉아 눈썰매 타고, 이렇게 산과 냇가가 있는 이 동네는 사계절 놀이 걱정 없이 자연이주는 놀이터에서 잘 놀고 잘 컸다. 지금은 아이들 데리고 실내 놀이터로 현장 체험하러 여기저기 찾느라 정신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 우리 곁에 우리 동네 안에 자연놀이터는 보지 못하고, 동네를 돌아보며 나는 반성 한다.
이번 장마가 지나고 2-3일 지나면 냇가물이 제법 볼만해진다. 아이들 데리고 우리 동네 냇가에 가야겠다.
1976년 쯤 지금 돌다리가 놓여 진 천동쪽, 건너편이 석교동, 저 담 밑이 낭떨어지처럼 깊었었다.
*오른쪽 뒤가 박남미씨

아마도 81-2년으로 기억, 저기 위에 보이는 냇가 일직선 돌이 옛 돌다리, 지금은 다리가 놓여있다. 돌다리 위로
왼쪽 천동은 솥공장, 오른쪽은 석교동 돌공장, 예전엔 이렇게 천변의 자투리땅이란 땅엔 모두 채소를 심었다.
우리도 부지런한 아버지 덕분에 김장배추는 모두 천변에서 얻었었다. 장마가 심하면 한순간에 흙과 돌 바다로
변하는 천변이였지만.....,
95년 지금 돌다리 근천 아직 개발되지 않아 넓은 천, 메뚜기, 개구리 심지어 뱀과 근처에 오소리까지 있었던 곳.
지금은 안 계시는 부모님을 이렇게 다시 기억하는 좋은 시간 이였습니다.
주절주절 이야기가 길었네요. 모두 좋은 밤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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