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현근 교수(대전대 행정학과)우리는 ‘지방’에 산다. 하지만 ‘지방’하면 무언가 촌스럽다. 실제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지방은 ‘서울 이외의 지역’, ‘중앙의 지도를 받는 아래 단위 기구나 조직을 중앙에 상대하여 이르는 말’을 뜻한다. 결과적으로 지방은 가치중립적이라기보다는 서울 또는 중앙과 대조되면서 부족하고 열등한 느낌을 준다. 마찬가지로 지방정부, 지방대학, 지방문학 등 ‘지방’이 따라다니는 용어는 왠지 세련되지 못하고 뒤떨어진 것 같다.

 

우리의 ‘지방’에 해당하는 영어단어는 무엇일까? 바로 ‘local’(로컬)이다. 그런데 영영사전을 찾아보면 중앙의 지도를 받는다거나 서울(首都)과 대조되는 의미는 찾아볼 수 없다. 학술적 의미를 좀 더 추적하다보면, 로컬은 ‘일상생활을 통해 생생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규모의 장소’임을 확인할 수 있다.

 

대부분의 우리는 전 지구를 포함한 모든 규모의 사회공간을 실제 경험하고 생활무대로 삼기는 어렵다. 따라서 현재 내가 발을 디디고 살면서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는 로컬의 세계는 매우 소중하다. 그런데 ‘로컬’이 ‘지방’으로 바뀌는 순간 ‘생생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규모의 장소’의 의미는 퇴색하고, 우리사회 고유의 ‘서울과 대조되는’ 또는 ‘중앙의 지도를 받는’ 장소의 의미가 부각된다. 따라서 ‘지방정부’와 같이 ‘지방’이 포함된 용어는 종속되거나 덜 세련된 느낌을 동반하게 된다.


‘로컬’ 관점의 지방의 의미는 우리에게 다양한 시사점을 준다. 정보통신의 발달과 자본과 노동시장의 세계화는 우리를 친숙한 관계와 환경 너머의 세계로 불러낸다. 하지만 세계화시대라 하더라도 우리는 구체적인 장소에서 살 수밖에 없고 일상생활 역시 로컬의 맥락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로컬에 대한 관심은 우리 삶에 특수성을 부여해주는 친근한 장소(현장)와 그곳에서의 사건, 이야기, 기억, 의미와 정체성이 여전히 삶의 중요한 조건임을 일깨워준다.


로컬의 강조는 국가중심 사고의 전환을 시사한다. 우리사회는 근대화과정에서 대한민국이라는 국민국가의 영토성과 동질성이 절대시되면서 지방의 특수성은 무시되고, 국가(또는 서울)는 ‘중심’으로, 지방은 ‘주변’으로 불평등하게 인식되어왔다. 결과적으로 지방의 사건과 현상은 국가통치과정의 수동적 결과물에 불과한 것으로 간주해왔다. 하지만 친근하고 생생한 사건, 과정, 관계를 강조하는 로컬의 관점은 국가규모보다도 동네, 읍면동, 시군구와 같이 바로 우리주변에서 발생하는 정치․사회․문화․역사적 과정의 중요성과 우선성을 일깨워준다.


물리적으로나 경험적으로 내게 가까이 있어 친숙한 정부와 대학, 내가 자란 장소가 자양분이 되어 탄생한 문학의 의미로 지방정부, 지방대학, 지방문학이 다가올 때, 우리의 일상적 경험의 세계는 좀 더 풍요롭고 소중하게 느껴질 가능성이 높다. 또한 로컬 본래의 의미에 충실할 때, 지방자치의 의미도 달라진다. 지방자치는 더 이상 중앙정부의 양보와 배려에 의해 주어지는 선물 또는 재화(財貨)와 같은 것이 아니라, 로컬을 구성하는 다양한 주체들이 스스로의 역량형성을 통해 다른 지역과 차별화되는 장소의식과 정체성을 형성해가면서 로컬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는 과정을 의미하게 된다. 무엇보다 로컬의 의미로 지방을 해석할 때, ‘전 지구적으로 생각하되 지방적으로 실천하라’(Think globally, act locally)는 격언의 의미가 생생한 삶의 지혜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