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보은숲밭에서 볼 수 있는 생물 흔적들(뱀허물쌍살벌 벌집)


화려한 가을을 뒤로 하고, 겨울을 앞둔 보은숲밭은 부산스럽다.

11월의 보은숲밭은 고추, 배추, 호박 같은 작물들을 모두 거두어들여 겉보기에는 한 해 농사가 끝난 듯 보입니다. 사람의 손이 잠시 멈추고, 밭은 조용해진 것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서는 여전히 작은 생명들이 분주히 살아가는 겨울의 준비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수확이 끝난 밭에는 마른 줄기, 떨어진 씨앗, 잎조각, 그리고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작은 벌레들이 남아 있습니다. 이 잔잔한 흔적들이 바로 늦가을, 겨울철 야생동물과 새들에게는 귀한 선물이 됩니다. 방울새, 박새, 곤줄박이, 참새처럼 작고 활발한 새들은 바람이 거센 날에도, 눈이 내리는 날에도 밭 가장자리의 풀숲 사이를 날아다니며 씨앗 하나, 곤충 하나를 찾아 먹습니다. 그들의 작은 날갯짓은 마치 밭이 스스로 숨을 쉬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요.

겨울철 풀밭 사이로 먹이를 찾고 있는 붉은머리오목눈이


자연의 식탁 보은숲밭, 그리고 작은 생태계

고추밭에서 떨어진 말라붙은 고추 속에는 아직 씨앗이 남아 있습니다. 신기하게도 새들은 매운맛을 거의 느끼지 못해서, 고추의 매운 향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씨앗을 쪼아 먹습니다. 호박 밭에 남은 씨앗 역시 겨울철에 가장 인기 있는 영양 간식이에요. 단단한 껍질 속의 지방과 단백질이 새들에게는 추위를 견디는 힘이 되어주거든요. 배추밭 주변에는 아직 푸른 풀들이 남아 있고, 그 속에는 겨울에도 살아남은 작은 벌레들이 숨어 있어서 조류나 작은 포유류들이 차례로 찾아옵니다. 사람이 떠난 뒤에도 밭은 이렇게 '자연의 식탁'이 되어 다양한 생명들이 서로 기대어 살아가게 합니다.

보은숲밭의 밭 주변은 산과 숲이 맞닿아 있어서, 겨울이면 여러 종류의 산새들이 함께 모여다니는 ‘혼성무리’를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이 무리는 박새·오목눈이·곤줄박이처럼 비슷한 크기의 새들이 함께 이동하며 먹이를 찾고, 서로 포식자를 경계하는 친구들입니다.
바람이 매서운 날에도 그들은 나뭇가지와 밭의 울타리 사이를 오가며 짧은 울음소리로 서로의 위치를 알려줍니다. 작은 소리로 이어지는 그들의 협력은 겨울 숲의 또 다른 언어이기도 합니다.

가을 이후에 설치하면 많은 새를 유인할 수 있는 조류먹이통


조류에게 먹이를 주는 이유

보은숲밭에서는 한겨울이 되면 사람들이 작은 먹이통과 물그릇을 설치하기도 합니다. 해바라기씨, 조, 땅콩 같은 곡물은 추운 날씨에 에너지를 잃기 쉬운 새들에게 큰 도움이 됩니다. 눈이 소복이 쌓인 밭 한가운데서 곤줄박이가 먹이통 위에 앉아 해바라기씨를 쪼는 모습은 겨울 숲밭의 작은 기적 같은 풍경이랍니다.
하지만 먹이통은 새들이 많이 모이기 때문에 청결하게 관리하는 것이 아주 중요해요. 한 번에 너무 많은 먹이를 주기보다, 며칠에 한 번씩 새롭고 마른 먹이를 채워 넣고 통은 주기적으로 닦아주는 것이 좋아요.

2025년 3월 보은숲밭 계류 주변의 나무에 물이 들어오면서 봄이 시작됐다.


2026년의 봄을 기다리며

이렇게 잘 관리된 밭은 2월쯤이 되면 또 다른 변화가 시작됩니다. 눈이 녹고 햇살이 따뜻해지면 새들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고, 그 노래는 봄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가 됩니다.
보은숲밭의 밭은 다시 새로운 씨앗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땅 속의 미생물과 지렁이들도 슬며시 깨어납니다. 가을 수확이 겨울의 먹이가 되고, 겨울의 밭은 다시 봄의 생명을 키우는 생태의 순환고리 속에 있습니다.

풀밭사이로 먹이를 찾고 있는 노랑턱멧새 수컷


그래서 보은숲밭의 밭은 단순히 작물이 자라는 장소가 아니라, 사람과 새, 계절과 생명이 서로 이어지는 연결의 터전입니다.
이 이야기를 QR마크 해설판에서 만나면, 아이들은 밭에서 들리는 박새의 울음소리를 직접 듣거나, 겨울 새들의 이름을 배우는 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눈에 덮인 밭 위를 바라보며 “겨울에도 생명은 멈추지 않는다”는 것을 직접 느껴볼 수 있는 것이지요.